[법률 상식] 반의사불벌죄의 모순과 함정, 스토킹처벌법 개정
반의사불벌죄의 구조와 현실 : ‘처벌의사’가 좌우하는 정의의 경계
형법과 형사특별법에서 규정된 범죄 중 ‘반의사불벌죄’는 독특한 지위를 가진다. 이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국가도 그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다는 구조를 갖는다. 이는 처벌을 공익으로서만이 아니라 사익의 복원과 타협의 가능성으로 보는 시각에 기초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형사사법체계 안에서 때때로 가해자 중심의 전략 도구로 악용되거나,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를 왜곡하는 기제로 기능해왔다. 특히 스토킹, 가정폭력, 성범죄 등 ‘관계 기반 범죄’에서는 이 구조가 치명적인 왜곡을 초래해왔고, 최근 스토킹처벌법 개정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다시금 ‘처벌의 주체’를 누구로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1. 반의사불벌죄란 무엇인가?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는 처벌하지 아니하는 범죄’를 말한다(형법 제13조의 해석 및 관련 조항). 예를 들어 형법상 폭행죄(제260조 제1항), 협박죄 중 일부, 명예훼손죄, 과실치상죄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는 피해자와의 관계회복 가능성, 사적 자치의 존중, 사법 자원의 효율성 등을 고려해 입법자가 선택한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그 본질상 피해자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전제로 한다. 이 전제가 위협, 회유, 경제적 종속, 정서적 통제 등으로 인해 무너질 경우, 제도는 곧 정의 구현의 장애물로 전락한다.
2. 스토킹처벌법과 반의사불벌죄의 충돌
2021년 10월 21일 시행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약칭 스토킹처벌법)은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스토킹을 범죄로 규정하고 형사처벌의 틀로 끌어들인 전향적인 입법이다. 그러나 초기 법안에서는 스토킹행위를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여,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기소할 수 없게 만들었다(초기법 제18조).
이 구조는 곧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스토킹 피해자 다수는 가해자가 가까운 지인, 동료, 연인 혹은 가족이라는 관계적 특성상 처벌의사를 쉽게 밝히지 못했다. 더욱이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회유하거나 위협하여 ‘처벌불원의사서’를 받아내는 방식으로 형사절차를 무력화시켰다. 그 결과, 피해자는 더 큰 고통과 공포 속에 방치되었고, 사회는 무력한 법 앞에서 사건을 반복 목격하게 되었다. 2021년 말 발생한 서울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은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피해자가 분명히 두려움을 호소했음에도, 초기 스토킹 사건은 반의사불벌죄로 종결되었고, 이후 가해자는 피해자를 살해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3. 개정의 전환점 : ‘공공의 정의’로의 회귀
이러한 문제의식은 입법자의 태도를 바꾸었다. 2023년 10월, 국회는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2024년 1월부터 시행되었다. 핵심은 단 하나, 스토킹범죄에서 반의사불벌죄 조항 삭제였다. 이제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더라도, 검사는 독립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명백한 ‘공공성의 강화’이자 ‘피해자 보호의 우선화’를 의미한다. 형사절차의 주체를 피해자의 심리와 판단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개정은 단순한 법률문구의 수정을 넘어, 우리 사회가 스토킹을 단순한 사적 갈등이 아닌 공공의 안전을 침해하는 중대한 폭력행위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다른 유사 범죄 영역( 예컨대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디지털 성범죄 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징적 조치로 평가된다.
4. 제도의 반성 : 피해자의 목소리로부터 출발하자
반의사불벌죄는 원래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였으나, 현실에서는 종종 가해자 보호 장치로 작용해 왔다. 특히 권력 관계나 심리적 의존성이 큰 관계에서, 피해자의 처벌의사는 결코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향후 형사사법제도는 단지 피해자의 의사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의사의 자유롭고 실질적인 진정성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에 주력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반의사불벌죄를 다시금 정의의 렌즈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사적 화해의 공간을 열어두되, 그것이 공공의 안전과 법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형법과 형사특별법이 인간의 약함을 고려할 줄 아는 도구인 동시에, 그 약함을 악용한 가해자에게는 냉정하게 작동하는 장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 진실함을 지지하려는 사회의 태도가 자리해야 한다.
[참고자료 및 출처]
1. 「형법」 제260조 제1항, 제308조 등
2.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삭제 전 조항), 개정법률안(2023.10.17. 국회 통과)
3. 여성가족부, 『스토킹 피해자 실태조사 및 정책제언』, 2022
4. 대검찰청 보도자료, 『스토킹처벌법 개정 주요 내용』, 2024.01
5. 서울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관련 판결 요지 (서울중앙지법 2022고합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