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유감] 그냥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울화통이 치민다.
[대한민국 정치·사회, 그냥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비상계엄, 구속 취소, 대법원 부당 판결.....
참을 수가 없다. 이 말이 요즘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내 심정이다. 정치를 보면 짜증이 난다. 뉴스를 틀면 분노가 치민다. 거리에 나가면 불공정과 위선이 뿌리처럼 박혀 있고, 소셜미디어에선 목소리 큰 자들이 정의를 독점하려 한다. 이 모든 현상들 앞에서, 우리는 너무 오래 참고, 너무 조용히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말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와 사회, 이대로는 안 된다. 정말 화가 난다.
정치부터 이야기해보자. 여야는 매일같이 싸움질이다. 국가의 운명을 두고 진지한 논쟁을 벌이기보다, 이슈의 중심에 서기 위한 진흙탕 싸움만이 남아 있다. 본회의가 열려야 할 국회는 텅 비어 있고, 긴급한 법안은 ‘정쟁’의 이름으로 표류한다. 정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데, 지금의 정치는 문제 그 자체다.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정당을 위한 정치, 선거를 위한 정치만이 남았다.
왜 정치가 이토록 무기력하고 파괴적이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책임의 실종’ 때문이다. 말실수 하나에도 야단맞고 사퇴하는 해외 정치인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거짓말을 해도, 법을 어겨도, 권력을 남용해도 책임지지 않는다. 누구 하나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고, 사과를 하더라도 “유감”이라는 말로 포장된 기만뿐이다. 책임지지 않는 정치, 그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만연한 무기력과 냉소의 뿌리다.
사회는 또 어떤가. 겉으로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기득권과 편법이 작동한다. 대입, 취업, 부동산, 복지 어디 하나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없다. 돈이 실력이고, 배경이 경쟁력이며, ‘줄’을 잘 서는 것이 능력이라 여겨진다. 어느덧 국민들은 시스템을 믿지 않는다. 규칙을 지킨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고, 편법을 쓴 사람은 생존 전략가가 된다. 이 얼마나 슬픈 역설인가.
더 기가 막힌 건, 이 사회가 끊임없이 ‘청년’을 소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청년을 위한 정책을 입에 달고 살지만, 실제로 청년의 목소리는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기성세대는 청년에게 도전과 혁신을 요구하면서도, 기회의 문은 굳게 닫아두고 있다. 청년은 미래가 아닌, 그저 선거용 이미지일 뿐이다. 과연 이런 사회에서 젊은 세대가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분열을 조장한다. 세대 갈등, 지역 갈등, 남녀 갈등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런 갈등을 부추기며 클릭과 표를 얻는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나와 다른 목소리를 비난하고 침묵시키려는 목소리가 더 크다. 대화는 사라지고, 혐오와 조롱만 남는다. 이것이 우리가 만든 민주주의의 민낯이라면, 정말 부끄럽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필요한 것은 대단한 담론이 아니다. ‘분노’ 그 자체를 정직하게 마주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바꾸는 용기다. 정치에 실망했다고 무관심으로 돌아서면, 그 자리는 더 나쁜 권력이 차지한다.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체념만 하고 있으면, 불공정은 표준이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고, 끝까지 답을 요구해야 한다. 화가 난다고? 그래, 화가 나는 게 맞다. 문제는 그 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이다.
끝으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은 분명히 위기에 있다. 그러나 희망도 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우리처럼 ‘화가 난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분노는 변화를 이끄는 연료다. 침묵은 변화를 늦추지만, 분노는 세상을 바꾼다. 이제 우리는 침묵 대신 질문하고, 분노 대신 행동해야 한다. 그때야말로 진짜 ‘정의’와 ‘공정’이 시작될 수 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면, 이제 참지 말자. 대신, 싸우자. 말로, 글로, 투표로. 그리고 끝까지 물어보자. “왜 우리는 아직도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