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와 여행

[청송 여행] 주왕산 기암괴석, 푸른 소나무에서 살아갈 힘을 얻다.

세컨쉼터 2025. 6. 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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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靑松), 그 이름부터가 맑고 푸르다. 푸를 청(靑), 소나무 송(松). 말하자면 ‘푸른 소나무’다. 단순한 지명이지만, 그 자체로 청송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곳은 말 그대로 ‘푸른 것이 오래도록 남는’ 땅이다. 맑고 깊은 자연, 적막 속의 고요한 품격, 그리고 어느 계절에나 푸르른 생명의 기운. 나는 그 고요한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과의 대화를 위해 청송으로 떠났다.

처음 마주한 청송의 인상은 하나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숨”.
여기서의 숨은 단순한 호흡이 아니다. 깊고 천천히 쉬어가는 것, 세상의 속도에서 벗어난 존재의 숨이다. 서울의 소란과 부산한 감정들로부터 내 마음을 피난시키기 위한 여행이었는데, 청송은 마치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조용히 품어주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주왕산이었다. 주왕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다. 기암괴석이 직선적으로 솟구쳐 있는 그 풍경은 마치 자연이 만든 성곽 같았다. 그러나 그 거대한 암벽들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은 놀라울 만큼 부드러웠다. 자연의 강함과 섬세함이 공존하는 그 풍경 속에서 나는 ‘균형’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인간은 종종 그 균형을 잃고 살아간다. 강해지려 애쓰다 보면 부드러움을 잊고, 여유를 찾다 보면 힘을 잃는다. 그러나 주왕산은 말없이 균형을 가르쳐 주었다.

산을 내려와 청송 얼음골을 찾았다. 여름인데도 얼음이 녹지 않는다는 그곳. 실제로 발밑의 돌 사이에서 느껴지는 냉기는 신비로웠고, 주변의 자연은 경건하리만큼 조용했다. 그저 바람소리, 새소리, 그리고 내 발걸음뿐. 인간이 만든 소리는 아무 것도 없었다. ‘자연과 인간의 대화’라는 표현은 여기서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내가 자연에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오히려 나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청송 사과.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청송에서 유명한 사과 과수원을 찾았다. 직접 따서 먹은 사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단맛이 진하고, 향이 깊으며, 식감은 아삭했다. 그 사과 한 알이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청송의 시간과 정성과 공기의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부의 손끝에서 자연의 기운을 빌려 이뤄낸 예술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과 하나를 베어 물며 나는 이런 문장을 떠올렸다.
“사람도 이렇게 자라야 한다. 제 뿌리를 지키되, 햇살과 바람을 받아들이고, 깊이 익어가야 한다.”

청송은 유명 관광지는 아니다. 화려하지도, 유행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는 깊은 ‘격’이 있다. 일시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오래 머물러도 싫지 않은 고요함이 있다. 이곳의 푸름은 시각적인 색이 아니라, 마음의 색에 가깝다. 한 번 다녀오면 그 푸름이 가슴 속에 남는다. 어떤 풍경은 눈으로 기억되지만, 청송은 마음으로 기억되는 땅이다.

돌아오는 길, 나는 더 이상 바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고, 현실은 여전히 복잡할 것이다. 하지만 청송에서 쉬어낸 ‘숨’ 덕분에 나는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마음이 천천히 걷는 법을 기억했고, 자연의 균형을 되새겼고, 단순함의 가치를 배웠다. 그렇게 청송은 나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
“당신의 삶에서 진짜 푸름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질문 하나면, 다시 이 도시의 소란 속으로 걸어 들어갈 힘이 생긴다.
청송은 그런 곳이다. 소란한 삶에 조용히 말을 걸어주는, ‘푸른 소나무’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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