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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과 비움

[일상, 일생, 인생] 소소한 일상이 쌓여 수수한 일생이 되고 결국, 인생이 되는 것

세컨쉼터 2025. 3. 3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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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미세한 결, 일생의 잔결, 인생의 무늬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이 세 단어에 매혹되었다. 일상, 일생, 인생. 언뜻 보면 그저 유사한 단어의 반복처럼 들리지만, 이 단어들을 음미하면 할수록 그 안에 시간의 층위와 존재의 결이 섬세하게 녹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언어는 사유의 거울이며,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직조한다. 이 세 단어는 단지 삶의 단계나 구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해석하는 렌즈이자 하나의 사유 체계로 기능한다.

1. 일상 – 시간의 마디, 존재의 습관
“일상(日常)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반복이나 루틴을 넘어서, 인간이 세상과 접촉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에 대한 질문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활동의 유형을 '노동, 작업, 행위'로 나누며, 노동의 반복성과 일상의 순환성을 구분했다. 일상이란, 인간이 외부의 질서에 몸을 맞추고 스스로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반복하는 일련의 행위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일상은 우리가 자신을 구성하는 미세한 습관의 총체이며, 그 반복 안에서 우리는 정체성을 형성하고 세계를 해석한다.

일상이란, 말하자면 ‘우리 자신을 몰래 조각하는 조용한 끌’이다. 매일 마시는 커피, 창밖을 바라보는 습관, 익숙한 길을 걷는 동선 속에 우리의 성격, 기호, 심지어 윤리까지 녹아 있다. 어떤 이는 무질서한 일상 안에서 자신을 소진하고, 어떤 이는 의식적으로 일상을 단련하여 자신의 삶을 정제한다. 결국 일상이란, 세계를 향한 나의 ‘태도’의 가장 작은 입자다.

2. 일생 – 시간의 직조, 기억의 연대기
일상이 모이면 일생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시간’이라는 보다 명백한 벽과 마주한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했듯,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죽음을 향해 사는 존재다. 이 유한성의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을 더 절실하게 감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각자의 생애를 ‘일생(一生)’이라 부르며, 그 안에 자신만의 사건과 연대를 부여한다. 하지만 일생이란 단지 태어나고, 살고, 죽는 선형적 흐름이 아니다.

일생은 곧 ‘기억의 서사’다. 우리는 삶을 숫자나 연도로 기억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면, 감정, 인연, 향기 같은 비선형적 기억들로 구성된 하나의 내적 연대기다. 그리고 이 기억의 배열 방식이 바로 우리를 어떤 인간으로 만드는 핵심적 서사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일생을 실패의 연속이라 여기고, 어떤 이는 비록 상처가 많았더라도 그 안에 분투와 배움을 본다. 즉, 일생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이다. 삶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으로 남는다. 우리가 무엇을 경험했는가보다, 그 경험을 어떻게 의미화했는가가 우리의 일생을 결정짓는다.

3. 인생 – 존재의 서사, 의미의 미학
일상이 시간의 마디이고, 일생이 그것의 축적이라면, 인생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의미화할 것인가’에 대한 총체적 미학이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인생은 존재론적이면서 동시에 미학적이고, 윤리적인 물음이다. 우리는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좋은 삶인가? 이 모든 물음이 ‘인생’이라는 단어 아래에서 진동한다.

인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폴리스적 동물’이라 정의했지만, 동시에 ‘텔로스’ – 목적을 지닌 존재로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좋은 삶’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그 삶은 이성, 미덕, 공동체적 삶과 연결되어 있다. 현대인에게 있어 인생은 더 이상 단일한 목적을 지닌 구조물이 아니다. 오히려 다중의 서사와 가변적인 정체성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기획’하고 ‘연출’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나만의 서사적 무늬를 짜는 작업이다. 그것은 거창한 영웅 서사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작고 세밀한 단위의 진실들이 모여 만들어낸 직조물이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때로 거대하지 않고, 미세한 결에서 드러난다. 아이의 웃음소리, 사랑하는 이와 나누는 눈빛, 실패 속에서 다시 일어나는 작은 결단. 인생의 고귀함은 그런 장면들 안에 스며 있다.

‘살아낸다’는 말의 아름다움

결국 일상은 반복이지만, 그 반복은 존재를 조각하고, 그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일생을 만든다. 그리고 일생은 우리가 어떻게 인생을 정의하고 의미화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무늬로 완성된다. 세상은 자꾸 우리에게 속도를 강요하고, 성취를 기준으로 인생을 평가하지만,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진정한 인생은 성취의 총합이 아니라, ‘살아낸다’는 태도의 총합이다.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어떻게 존재했는가가 중요하다. 당신의 일상이 따뜻하고, 당신의 일생이 후회 없으며, 당신의 인생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 모든 순간이 쌓여,
당신만의 무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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