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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상식] 비동의강간죄 도입 논의 - 동의 여부 입증이 주요 문제

세컨쉼터 2025. 4. 2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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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의강간죄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법률적 개념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인식하고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사회적 태도를 반영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비동의강간죄의 도입 논의는 여성 인권의 진전, 젠더 정의, 성범죄 피해자의 권리 보호 등 다양한 층위를 아우르며 진행되어 왔습니다. 아래에서는 이 주제를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1. 비동의강간죄란 무엇인가?
비동의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이 아닌 피해자의 명확한 동의가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강간죄를 인정할 수 있는 성범죄 유형입니다. 다시 말해, 물리적 강제력이나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도 상대방의 자발적이고 명시적인 동의 없이 성관계를 가졌다면 이는 형사처벌 대상이 됩니다. 이는 기존 한국 형법 제297조의 ‘폭행 또는 협박’ 중심의 강간죄 구성요건에서 벗어난 새로운 접근 방식입니다.

2. 기존 강간죄의 한계 : ‘폭행·협박 중심주의’
현재 한국 형법상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간음한 자”에 한정하여 처벌합니다. 이 조항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저항 여부에 초점을 두고 성관계 당시 피해자가 충분히 ‘저항’했는지를 따지면서, 피해자에게 부당한 입증 책임을 전가합니다.

‘합의 여부’보다는 ‘폭행의 정도’가 중심이 되어 성적 동의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강한 폭력을 썼는지를 기준으로 판단됩니다. 이는 피해자의 심리적 위축, 공포, 얼어붙은 상태 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합니다.

피해자 비난 가능성의 문제가 제기되어 피해자가 ‘왜 저항하지 않았는가’라는 2차 가해성 질문에 노출되며, 신고율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원인이 됩니다.

3. 비동의 기준의 법적 가능성과 국제 동향
유럽연합(EU)의 주요 국가들—스웨덴, 독일, 벨기에, 아이슬란드 등—은 이미 ‘동의 여부’를 강간죄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2018년부터 ‘명시적 동의’가 없는 모든 성관계를 강간으로 규정하며, 동의는 말로 표현되거나 행동으로 확인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법조문을 바꾸는 것 이상의 사회적 인식 전환을 전제로 합니다. 즉, 성행위는 언제나 ‘명확한 동의’에 기초해야 하며, 그 동의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확인되어야 한다는 전제입니다.

4. 한국에서의 비동의강간죄 도입 논의
한국에서도 최근 몇 년간 이를 반영한 형법 개정안이 발의되었고, 성범죄 피해자 지원단체들과 여성계, 일부 법학자들은 ‘비동의’ 기준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법조계, 특히 일부 형법학자들과 판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반대 목소리가 존재합니다. 주된 논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입증 책임 문제 :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하는 역설.

● 무고 가능성 우려 : 명시적 폭행 없이도 강간죄 성립이 가능해질 경우, 무고가 증가할 수 있다는 주장.

● 형사법의 명확성 원칙 침해 : ‘동의’의 의미가 법적으로 모호하다는 비판.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결국 ‘동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무지 또는 회피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형사법의 명확성은 중요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헌법적 가치보다 우선될 수는 없습니다.

5. 비동의강간죄가 가져올 변화
이 법이 도입된다면 단순히 처벌 대상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에 대한 사회 전체의 인식 전환이 수반됩니다.
성행위의 조건은 항상 ‘쌍방의 동의’여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이 확립되어야 하고, 피해자의 침묵이나 무반응이 ‘동의’로 해석되지 않도록 하는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성범죄 피해자의 진술 신뢰성을 제고함과 동시에 신고율 향상에도 영향을 미칠것이라 예상됩니다.
또한, 이는 단순히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성적 존엄성과 의사결정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의 진화라 볼 수 있습니다.

6. 동의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이다
비동의강간죄는 단순한 법률 조항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어떤 가치 위에 법과 질서를 세우고자 하는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성적 관계는 신체적 결합이기 이전에, 인격적 동의의 결과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비동의강간죄의 도입은 정의로운 사회로의 필연적인 걸음이며,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폭력을 수반하지 않으면 강간이 아니다’라는 후진적 인식에 갇혀 있게 됩니다. 동의 없는 관계는 성관계가 아니라 침해입니다. 법은 바로 그 경계를 명확히 하도록 존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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